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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원인]가슴 아팠던 6.25 전쟁 그때를 기억하자

[625 전쟁 원인]가슴 아팠던 6.25 전쟁 그때를 기억하자

 

 

 

 

한국인이라면 꼭 기억해야할 숫자이자 날짜는 바로 오늘, 6.25 입니다.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한 비극적인 역사인 6.25는 그 날을 기억하는 것도 

 우리나라를 위해 한몸 기꺼이 바쳤던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정신도 잊어서는 안되는 날이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요새 학생들의 역사 지식이 부족하고 역사의식 또한 문제가 된다는 기사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요,

오늘, 이날 만큼은 우리나라의 역사에 차분하게 이야기 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

1950年 6月 25日 새벽 6.25전쟁 발발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던 기쁨도 잠시, 우리나라는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갈리게 됩니다.

조국통일을 위한 마음은 같았지만, 이념의 차이가 분단국가를 만들게 된 것 이지요.

더불어 당시 미국과 소련과의 견해 차이도 드러나기 시작했지요.

 

 북한이 생각하는 남한은 '미국이 친일파를 내세워 다스리는 식민지'라고 하며 적대시 하

당시 남한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은 무력으로 북한을 진격하는 '북진 통일'을 주장하는 등

 

남과 북의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게 됩니다.

결국 같은 땅 위의 다른 국가가 되었지요.

 

 

 

 

 

6.25 전쟁 발발 시기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비극적인 전쟁이 시작됩니다.

 당시 남한 사람들은 '38도선에서 또 전투가 벌어졌구나'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남한을 침략할 계획으로 남침하기에 이르지요.

 

 

※ 6.25 전쟁 남침인가, 북침인가?

 

당시 북한의 김일성은 "대한민국이 북침했으므로 반격한다"라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남침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침략전쟁을 은폐하기 위한 계략인데요,

하지만 1994년 러시아 옐친 대통령이 전 김영삼 대통령에게 제공한 6.25 전쟁 관련 비밀문서에는

 "김일성의 요청을 스탈린이 승인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다"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어 북한의 남친이 확실시 되었습니다.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것 = 남침

 

 

 

 

 

불시에 북한군의 기습공력을 받은 남한은 서울을 점렴당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대한민국은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유엔군이 나타나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게 되면서 전세는 뒤집어지게 되었지요.

이때 북한 역시 중공군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서울이 다시 북한군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남한군과 미군이 힘을 합쳐 결국 1951년 3월 5일 서울을 되찾습니다.

이후 1년동안 휴전회담이 이뤄지게 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맺어지면서 사건은 마무리되게 됩니다.

 

 

 

 

6.25전쟁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상자와 이산가족이 생겨나게 됩니다.

한 순간에 가족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 참 황당하지 않으신가요?

 

6.25 전쟁이 일어난지 어느덧 반세기가 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주신

우리의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내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며 국력을 강화하는 것이 그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 아닐까요?

 

이 순간에도 남한을 위협하고 도발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 북한이라는 것이 쓸쓸하네요.

뭐라 말할 수 없는 아픔이 느껴지는 오늘의 포스팅 이었습니다.

6.25를  헛되이 보내지 말고 한번쯤은 그때의 아픔을 기리는 시간을 갖을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이상 남다른감자탕 남다른만족팀의 남다른 대리였습니다.